The somebody

 

 내 이름은 Danny Santiago : 나를 위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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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4 용지 다섯장에 불과한 다니엘 제임스의 The somebody는 단지 한 소년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존재 하는 이야기이며 작가가 스스로를 위해 쓴 글이다. 이 소설의 제목인 ‘The somebody'는 카토가 바라는 ’누군가‘다. 소년은 Somebody가 되고 싶다. 카토는 ’오늘 난 학교를 그만 두고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소년의 누군가는 작가라는 구체적인 직업을 가진 somebody일까? 카토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somebody가 되길 원한다. 카토는 LA 동쪽에 살고 있다. ‘감방에 간 고릴라와 ... 해군에 입대한 깜씨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가 떠난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barrio에 살고 있다. 카토의 모호함은 ‘건물 해체 업자들이 불도저와 트럭을 가지고 몰려’든 그가 사는 동네의 이미지와 부합한다. 재개발 구역으로 사람들이 떠나 버린 카토의 마을은 더 이상 ‘그 옛날에는 그 누구도 감히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도 아니며 이미 개발이 완료되어 번듯한 건물들이 서 있는 곳도 아니다. 카토 또한 그렇다. 오늘부터 이전의 그가 아니기를 선언했지만 번듯한 그 누군가, somebody 또한 아니다.
 The somebody의 작가 Daniel James가 본인의 이름 대신 Danny Santiago라는 필명을 사용하듯이 소설 속 소년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름’이 아닌 카토 드 샘록(Chato de Sharmrock)를 자랑스럽게 사용한다. 소년의 이름에서 카토는 멕시코 말로 ‘고양이처럼 납작한 코’를 말하며 드 샘록은 소년이 살고 있는 거리 이름이자 소년이 소속 되어 있는 갱단의 이름이다. 이 두 가지의 조합이 소년이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과 구분 지어 자신을 somebody로 만들어 줄 이름 인 것이다. 카토는 학교와 아버지에게서 분리되고자 한다. 카토 드 샘록이라는 이름을 가지면서 소년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름이 아닌 내 이름을 그곳에 적어요. 난 아버지와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그는 아버지가 준 이름을 가진 평범한 소년이고,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카토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웃음과 조롱뿐이다. barrio 출신이라는 것은 이웃은 물론이거니와 부모에게조차 어떤 기대를 갖게 하지 않는 것이다. 카토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소년이 마지막으로 희망을 가졌던 엄마에게서조차 그건 사치였을 뿐이었다. 카토의 ‘집에는 항상 토하는 아기가 있’었고 ‘엄마가 학교 가지 않냐고 고함을 지르기를 계속 기다렸는데 아마 잊어’버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학교와 가족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카터가 기댈 곳은 그의 새 이름의 반을 차지하는 ‘드 샘록’이라는 갱단뿐이다. 하지만 드 샘록의 ‘다른 모두는 이제 다 떠나버렸’고 그를 노리는 시에라 거리 갱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어쩌면 다행일이지 모른다. 시에라 거리 갱단이 남아 있음으로서 카토 또한 드 샘록의 마지막 갱단원으로 스스로를 존재시킬 수 있는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칼데론은 카토에게 말한다. ‘공룡의 최후가 어땠는지 알아?’ 칼데론이 보기에 카토가 공룡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칼데론이 카토에게 오라고 하는 곳은 보이즈 클럽이다. 말 그대로 소년들을 위한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카토는 칼데론에게 개라고 욕을 한다. 카토는 일개의 소년이 아닌 공룡이고자 한다. Somebody가 될 공룡 말이다. 작가에게 많은 사람들이 말했을 것이다. 글쟁이의 최후가 어떻게 될 것 같아? 혹은 사회주의자의 최후가 어떨 것 같아? 이에 다니엘 제임스는 그들에게 카토가 그랬던 것처럼 개같은 놈이라고 욕설을 퍼 부을 것만 같다. 카토는 자신을 학교와 보이즈 클럽에 있는 하나의 소년이 아닌 somebody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백인치고는 좋은 사람’인 5학년 때 선생님 컬리가 자신을 입양하고 싶어했다고 생각하며 ‘많은 공공장소에 쓰여 있는 이름들은 조잡하지만’ 자신의 것은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청소년기의 특징인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자부심이기도 하다.
 미친토끼라 불리는 소녀가 카토의 이름에 낙서를 했을 때 카토는 ‘말하기 부끄럽지만 난 거의 그래’ 라고 말할 뻔 했다. 하지만 소녀의 립스틱을 던져버리고 ‘내 평판을 생각했어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작가가 맥카시 조사 위원회에의 “협조‘를 던져버리는 모습이 겹쳐보인 것이 나뿐일까?
 카토는 ‘아시다시피, 난 허풍쟁이는 아니지만...’이라고 말하지만 ‘브로드웨이의 내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그것을 본 ‘내 아버지뻘 쯤 되어’ 보이는 사람은 소년을 취직 시켜주고 아름다운 소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환상을 품는다. 카토는 아버지에게는 받지 못했던 기대를 브로드웨이 길거리에서 만난 남자에게서 받는다. 이건 그의 희망이 투영된 장면이다.
 소년은 ‘오늘은 제 인생에 있어 중요한 날’이라고 말한다. ‘학교를 그만 두고 글을 쓰는 일을 하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 소년이 하는 일은 구식 분필로 마을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쓰는 일이 전부다. 이것이 소년이 말하는 글을 쓰는 일일까? 카토의 이름을 쓰는 행위는 상징적 모습이다. 작가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 같은 것이다. 분필과 벽만 있으면 ‘샤토 드 샘록’이라고 적는 소년처럼 펜과 종이만 있으면 Danny Santiago라는 이름으로 글을 계속 써 나갈 거라는 다짐 말이다.
 환상 속에 빠져 사는 모습을 보이는 듯 했던 카토는 ‘자 현실은, ’이라고 말하며 현실을 이야기한다. 현실은 손이 시릴 정도로 추운날, 폐허처럼 변한 마을 변두리에 분필을 들고 벽에 낙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소년은 말한다.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자나요, 왜냐하면 난 환상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난 스타나 경량급 복싱 챔피언이 될 필요가 없어’  ‘충분한 분필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고 쓸 수 있는 벽이 있는 모든 곳에서 나는 유명해질 거’라고 말한다. 이건 자신감의 표현이다. 수 많은 장애물이 존재하지만 단지 분필과 벽만 있으면 된다는 자신감의 표현. 소년에게 이런 자신감이 필요한 것은 작가 자신이 소년이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되지만 카토가 ‘시에라 녀석들, 경찰들, 다른 모든 사람들’의 방해를 받듯이 수 많은 장애에 부딪힌다. 게다가 자신의 글에 대한, 재능에 대한 의심까지 더해지면 글을 쓰는 행위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자신감이다. “나는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된다. 내가 뭐 엄청난 사람이 되겠다는 건 아니야. 난 단지 작가 Danny Santiago가 되고자 하는 거야. 그리고 그것으로 된거야”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불안한 환경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처음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보았던 것은 단지 어린 소년의 허영심뿐이었다. 하지만 다시 이 이야기를 읽게 되었을 때는 꿈을 이루고자하는 자의 자신만만함과 손가락이 시려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크레용 두 박스’를 모두 소진해버린 열정에 가슴 두근거림이 있었다. 

Posted by 가나다라마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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