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문틈사이

 

 눈에 보이는 다분한 의도와 성취되지 못한 목적

 

<문틈 사이>는 공포연극인 줄 알고 보았던 연극이다. 네이버 카페 중 한 곳이 그렇게 홍보를 하였고 당시 한여름에 많은 공포연극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공포연극이 아닌 그로테스크 연극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분히 공포연극을 찾는 관객을 겨냥했음을 포스터를 통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 연극을 공포 연극의 범주에 넣기 힘들기에 그로테스크라는 단지 분위기를 말하는 단어로 극의 장르를 만들고자 한다. 우연히도 7월 25일 첫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총체적 난국? 이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지만 우탕탕탕하고 연극이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관객석의 불이 꺼지지 않아 정시에 공연이 시작되지 못한 것은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의 조명 문제는 심각했다. 배우 세명이 왼쪽에 몰려 서 있는데 파랗고 빨간 조명은 무대 가운데를 밝히고 있었다. 배우들은 얼굴을 볼 수 없는 어둠에서 대사를 주고 받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조명이 정확한 지점을 가리키지 못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두 번째는 남자 배우들의 연기가 내게는 자연스럽지 못하게 느껴졌다. 대사와 대사 사이에 호흡이 없이 잊어 먹기 전에 빨리 대사를 끝내야 겠다는 느낌으로 좌르르 말을 하는 거다. 극 후반에 등장한 상점 주인 아저씨의 연기는 민망 할 정도였다. 뭔가 특색있는 캐릭터를 가지려고 한 것 같은데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를 위한 연기 같은 느낌이 너무 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무대. 처음 공연장에 들어갔을 때 무대 디자인은 훌륭해 보였다. 하지만 이것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한 것 같다. 차라리 아들의 시체를 온전히 보여주는 것보다는 도끼로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마네킹이나 더미를 사용해 머리가 2층에서 떨어지거나 대롱거리며 메달려 있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 꽤 높은 높이에서 남자가 자연스럽게 떨어지려고 노력했지만... 진짜 사람이 자연스럽게 떨어지기는 힘드니까 말이다. 무대를 충분히 이용해 다양한 장치를 했다면 공포연극이라는 포맷에 더 맞는 극을 전개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 연극은 루버트부르크의 리투아니아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리투아니아를 연극으로 본 적도 희곡을 읽은 적도 없기 때문에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아마 약간의 각색은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연영과에서는 의례 연기 연습을 위해 사용하는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인지 많은 공연이 다양한 주체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극단 까망도 2008년에 이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그런데 왜 이 공연의 이름을 <문틈 사이>로 바꾸고 공포연극이라는 것을 전면에 내세워 새롭게 공연을 하는 것일까? 여름을 맞이해서 3-4편의 공포 연극이 무대에 올려져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트렌드에 편승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포스터는 정말 잘 만든 것 같다. 낚시질 하는 데 최고... 왼쪽 아래 있는 포스터가 지난 공연에 쓰였던 것인데 포스터에서 이미 결과를 보여주는 우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포스터는 극과 너무 상관 없지 않은가? 제목은 왜 또 <문틈 사이>인가? 살해 계획을 세우고 누군가가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감을 알려 주기 위해? 하여간 연극과 어울리지 않는다.

 

 

 극은 무엇 하나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가난으로 인한 고통과 가족의 갈등, 인간의 욕망이 있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해 내지 못했다. 아쉬움이 크다. 바보형과 딸의 식탁신(?)에서 왜 공포음악과 파란조명은 사용된 걸까... 이런 장면이 꽤 되었다. 조명과 음악소리는 공포를 주기에 굉장히 효과적이지만 적절한 상황이라는 것이 있는 것 아닌가? 

Posted by 가나다라마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