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리야에서 폴론나루와를 가기 위해서는 20-30분정도 버스를 타고 나와서 갈아타야했다. 담불라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폴론나루와로 간다고 하면 갈아탈 곳에서 내려준다. 폴론나루와로 가는 버스는 종착점은 KADURUWELA로 폴론나루와는 종착점에서 5km정도 떨어져 있다. 폴론나루와는 old town과 new town으로 나뉘어져있고 서로3km정도 떨어져있는데 여행객은 당연히 올드타운에 머문다. 뉴타운에 머물면서 왔다갔다 할 수도 있겠지만 개별 여행자라면 사실 그건 조금 귀찮은 일이 될거다. 패키지 여행자라면 전혀 상관 없을테고. 







 95년쯤에 한국에서 3년동안 일했다는 아저씨의 동생집(Thisal guesthouse, 1000루피)에서 자기로 했다. 일반가정집을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는 건데 방안에 화장실도 있고 깔끔하고 좋다. 일반 가정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면 일반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주인이 사이코면 더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과 대개 손님이 나 혼자이기 때문에 옆방 여행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tv소리를 비롯해 일반적인 가정집에서 나는 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부부싸움이라도 하는 날엔 더 힘들어 질 수도 있다. 밤 늦게 혹은 아침 일찍 왔다갔다 하는 게 신경쓰이기도 한다. 아저씨의 도움으로 손쉽게 자전거를 빌려서(350루피) 폴론나루와 투어에 나섰다. 잠금 장치를 달라니까. 자전거 대여점 여주인은 그런 거 필요없다고 하고 옆에 있던 아저씨는 'no 도둑놈'이라고 한다. 주인이 그렇다니까 그냥 막 세워두고 다니지 뭐 하고 길을 나섰다.







폴론나루와 유적지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면 Gal-Vihara다. 스리랑카에서 본 부처상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바위의 문양이 그대로 부처의 몸을 타고 흐른다. 이 곳이 수도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 1000~1200년 경이라고 하는데 부처의 조각이기에 종교적인 마음을 가지고 만들었을거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조각가도 결국 예술적으로 아름답기를 원했을테고 그것이 종교적인 마인드보다 앞서는 순간이 생기지 않았을까? 부처님이 무늬가 있는 매끈한 돌을 깎아 만들어졌는데 잘록한 허리와 큰 골반을 가지고 있다. 부처의 교리에 맞게 석가모니의 이야기에 따른 실제 모습은 거의 뼈만 남아있는 앙상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조각가의 취향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의 미적 기준에서는 이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나보다.





그냥 바위벽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빼곡히 글씨가 써 있다. 심지어 삐뚤어지지 않게 노트처럼 선도 그어져있다.





티비보다 잠든 부처님.






누워있는 모습, 서 있는 모습, 앉아 있는 모습 등 다양한 포즈로 조각되어있는데 눈을 표현하기 어려웠는지 모두 눈을 감고 있다. 아니면 그것도 조각가의 취향.













새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부처의 위에서 이런 처음보는 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스리랑카 어딜가나 바위옆에 꼭 바위가 쓰러지지 말라는 것처럼 나뭇가지들을 바쳐놓은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마도 소원을 비는 방식인 것 같은데 불교와는 무관하고 무속신앙 같은 것인가보다.






Pabalu Vehere

Parakramabahu 왕(1153 - 1186 AD)의 아내인 Rupavati 여왕에 의해 지어졌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폴론나루와의 거의 모든 유적의 안내문에 쓰여 있듯이 고대 이름이나 지은 사람에 대한 증거는 없다. 온전한 부처가 없다. 팔이 없거나 머리까지 없다. 겉에 발라놓은 시멘트(?)가 사라져 쌓아놓은 벽돌의 모양만으로 와상이었을거라 생각되어지는 부분도 보인다. 한때 수도였는데 왜 이렇게 될 수 있는 지 잘 모르겠다. 확실히 우리나라와는 다른 것 같다. 경주, 공주, 개성, 평양 등 과거 수도였던 곳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종교를 가지고 있어서 계속 보존되어 오지 않나? 종교인이 없어진다고 하면 그 유적이나 종교 시설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것을 짓거나 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고... 이렇게 폐허가 되고 방치되는 것은 수도가 바뀐 후 사람들이 과거의 수도에서 모두 빠져나왔다는 것일까? 일부러 이주를 시켰나? 굳이 이런 모습이 될 이유가 있나 싶다. 타밀족의 침입? 전쟁으로 폐허가 되서 삶을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과거의 수도를 떠나는 식이었을까?








Siva Devale No.2 

이게 넘버2이므로 조금 떨어진 곳에 넘버 원도 있다. 폴론나루와에서 가장 오래된 힌두사당으로 라자라자왕(985 ~ 1014)에 의해 건립되어 1000년 정도되었다. 사당 앞에 시바가 타고 다니는 소 난디가 있다. 물론 그도 신이다.  큰 힌두사원에서 의식을 하는 건 본 적 있는데 이렇게 작은 사당에서 하는 건 처음 본다. 그럼에도 언제봐도 힌두의식은 강렬한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라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와, 저 사제 등 근육 보소.








스톤북








Lankatilaka

인도의 영향을 받아 parakramabahu 왕(1153 ~ 1186)에 지어졌다. 부서진 거대한 부처상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흙길을 다니다보니 앙코르와트를 다니는 기분이었는데 안에 차가 다닌다는 것이 좀 다르다. 유적지의 규모도 훨씬 작다. 그래서 자전거타고 다니기에 더욱 좋다. 자전거를 타고 3시간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다. 많은 유적을 둘러봤던 사람들에게는 인상적이랄 것이 없는 유적지가 많아서 좀 지친다. 게다가 설명도 특별하지 않고 시기리야락처럼 남겨진 이야기도 없다. 시간이 없거나 힘들면 간단하게 보고 Gal-VIhara만을 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다. 더욱이 아누라다푸라를 지나온 여행자에게는 더욱 그럴 것 같다.









처음 보는 원숭이다. 이 녀석 땅을 가로질러갈 때 꼭 고릴라처럼 움직인다. 몸이 육중하다. 포스가 넘친다.


































망고를 썰어서 팔고 있길래 사 먹었는데 달지 않고 새콤하다. 아직 덜 익었나보다.









유적지를 나오면 옆으로 커다란 호수가 있다. 






자전거를 빌린지 3시간만에 갔다주기도 뭐하고 아직 해가 지려면 2-3시간 남아서 뉴타운으로 가려고 했는데 길을 잃고 내가 도착한 곳은 Kaduruwela였다. 꽤 큰 도시다. 게다가 폴론나루와 기차역이 여기있다. 여기가 뉴타운인가보다. 뉴타운 이정표가 다른데로 되어있었는데 헷갈린다. 





스리랑카의 길거리, 특히 시골 길거리나 버스정류장에는 이런 종이가 많이 붙어있다. 부고를 알리는 것 같다. 

심지어 이런형식으로 묘지비석에 붙어있는 것도 보았다.





폴론나루와는 아주 작은 동네인데 여긴 꽤 크다. 큰 빵집에 들러 저녁빵을 사간다. 원래 빵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긴 선택이 2가지다. 빵 or 카레. 카레는 (빵에 비해서) 비싸다. 그리고 양이 엄청많다. 다 먹기전에 배가 터지려한다. 사실 빵도 맛은 카레와 다를게 없다. 매콤한 빵이 대다수다. 맨빵이 가장 싸고 매콤한 빵, 단 빵 순으로 비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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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바웃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