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뒤 여자

 거울 뒤 여자의 거울 깨기는 슬프다

 

 <거울 뒤 여자>는 가희다. 가희는 왜 거울 뒤 여자가 되어야만 했을까. 가희와 재민, 극에는 등장하지 않는 성현 중에서 관계의 종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가희다. 그런데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도 가희다. 그녀는 감정에 충실했다. 성현을 사랑했고 재민도 사랑했다. 죄책감과 함께 이대로는 안된다고 느낀 것도 가희 뿐이다. 재민에게 성현은 거울이고 성현에게 재민은 가희를 붙잡기 위한 볼모다. 재민과 성현은 이 아슬아슬한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고자 했다. 거울처럼 깨질 듯한 관계의 불안보다는 이 관계에서 오는 위안을 더 크게 인식했다. 재민과 성현은 무섭다. 반면 가희는 애틋하다. 어쩌면 이건 우습게도 <거울 뒤 여자>의 이야기가 영화 <주홍글씨>와 겹치면서 무대 위의 가희가 스크린 속 이은주로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스무살 때 김영하는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이었다. 분명 <거울 뒤 여자>의 원작인 <거울에 대한 명상>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내게 그 소설은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두 연출가에게 이 소설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을 정도의 영감을 줬다. 그래서 영화 <주홍글씨>가 만들어졌고 연극 <거울 뒤 여자>가 무대에 올랐다. 갖힌 공간이라는 점에서 연극적 한계를 장점으로 전화할 수 있는 소재로 다가왔을 것 같다. 소설과 영화가 이미 존재해서 줄거리를 알고 있는 관객이 꽤 되었을 거다. 나도 영화는 기억에 남기에 이야기를 알고 보게 되었다. 확실히 이야기를 알고 보면 흥미가 떨어진다. 게다가 <거울 뒤 여자>는 가희와 재민만 나오는 2인극이며 장소는 그들이 갇힌 한강변 트렁크가 전부다. 이런 집중된 요소들 때문에 극은 산만하지는 않지만 지루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저런 내용을 마구 집어넣은 대학로 연극들이 많아서 짜증날 때가 많은데 이 극은 그런 점에서 보면 몰입을 위해 훌륭한 장치를 가진 셈이다. 그럼에도 이야기에서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비단 내가 이야기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갇혀진 장소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 영화 <베리드>가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관속 장면만 나오는 이 영화는 굉장히 흥미롭다. 이야기 또한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반면 <거울 뒤 여자>의 경우 이야기의 중요 부분 중 하나인 재민의 나르시즘이 많은 대사와 나래이션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이 제대로 설명되어지지 않은 느낌이다. 극의 초반 많은 대사와 나래이션으로 너무 설명적이어서 불편하기도 했다. 갇힌 공간의 설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 뭐.. 보다보니 곧 익숙해 지기는 하더라. <베리드>에 비해서 뛰어난 점은 아무래도 갇힌 공간이 투명으로 세 곳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와 연극의 차이일 수도 있다. 만약 <거울 뒤 여자>가 <베리드>처럼 객석을 향한 한 곳과 열린 장소로 하나의 공간만 만들어 두었다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자체, 보여주는 방식이 크게 달라져야 했을 것이다.

 

 

 <거울 뒤 여자>에서 처음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무대 디자인이고 두번째는 배우들의 연기일 것이다. 투명으로 만들어진 갇힌 공간의 위치를 이어놓으면 삼각형을 이룬다. 가희, 재민, 성현의 관계를 무대디자인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각 인물이 모두 각각의 갇힌 공간에 갇힌 존재로서 숨쉬지 못하고 괴로워하면서도 갇혀있기에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희와 재민이 한 곳에 갇혀있으면서도 종종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그들이 트렁크에 갇히기 전부터 존재하던 방식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세로로 세워진 공간의 위는 깨진 거울처럼 깨진 부분이 보인다. 결국 그 답답한 갇힌 공간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그 투명 막을 깨는 수밖에 없다. 거울을 깨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괴로워하다 죽게 될 뿐이다. 물론 관계를 깨는 것 또한 상처다. 포스터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산산조각 난 유리와 함께 온 몸이 함께 조각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 이틀... 나흘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해서 껴안고 목조르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보다는 나을 지도 모르겠다. 이 삼각형 무대구조는 조명으로 세 개의 갇힌 공간을 삼각형 감옥으로 상정하고 재민이 그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에서 상징성의 극에 달한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연극이어서였는지 나래이션 때문이었는지 처음에는 가희와 재민의 연기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두 남녀의 애증과 갇힌 공간 속에서 삶이 죽음으로 변해가는 사이 드러나는 두 배우의 움직임과 숨이 좋았다. 조금 느슨해진다고 느껴질 때 음악과 춤이 무대에 펼쳐지면서 내 감정 호흡과 잘 맞는다는 생각도 했다. 성현이 등장하고 과거의 이야기와 재민의 나르시즘을 말이 아닌 보여주는 방식으로 처리해 무대 위 풍경에 변화를 주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거울 뒤 여자>가 욕망과 나르시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더 크게 다가왔다. 왕비에게 백설공주가 제일 예쁘다고 말해 줄 거울이 없었다면 왕비는 백설공주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거울 뒤 여자> 블로그 : http://mirror2012.com

Posted by 가나다라마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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