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낭메고 떠나다/차이나 여행기

[칭다오 여행] 칭다오 카톨릭 성당(천주교당), 가스펠 교회(기독교당), 영빈관

 

 중국의 작은 유럽이라 불리는 칭다오인만큼 불교와 도교사원이 아닌 성당과 교회가 칭다오 여행에서 꼭 가볼 곳에 꼽힌다. 칭다오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 건물칭다오 카톨릭성당(천주교당)은 언덕 위에 56미터의 높이로 2개의 첨탑이 높게 서 있기 때문에 어디서든 잘 보이는 편이다. 성당의 색은 주변의 건물들과 같은 살구색 바디에 주황색 지붕이어서 칭다오 풍경에 잘 어우려져 있다. 천주교당에서 높은 첨탑만큼 인상적인 것은 웨딩촬영을 하는 수 많은 커플들이다. 천주교당은 1932년부터 2년동안 독일에 의해서 지어졌다. 문화 대혁명 당시 성당이 일부 파괴되고 내부의 많은 유물이 사라졌는데 1981년부터 예배가 가능해지며 복구되었다. 문화대혁명 때 파괴된 십자가는 언덕에 묻었다고 한다. 현재는 국가 중점 문화유물로 지정되어있다. 성당의 내부에 들어가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9월 초와 말에 방문했고 찾아간 시간과 아침과 저녁, 낮으로 여러번이었는데 단 한번도 성당 문이 열린 것을 본 적이 없다. 복구 중인 것인지 수 많은 예비부부들이 성당내부에서 웨딩촬영이라도 할까봐 그런지 문을 굳게 닫고 있다.


 


칭다오의 이국적인 풍경들은 중국인들을 사로잡는다. 특히 신혼부부들의 눈을 사로잡았는지 많은 천주교당 외에도 칭다오 곳곳에서 웨딩촬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만큼 웨딩업체도 눈에 많이 띈다. 커플이라면 배낭여행자의 모습이 아닌 괜찮은 옷을 챙겨가서 예쁜 커플사진을 찍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성당의 앞 마당과 주위 샛길들이 유럽처럼 돌들이 깔려있어서 걸어다니기에도 좋다. 


  


천주교당 앞의 공간을 빼면 사진 찍는 것이 녹록치 않다. 앞과 옆, 뒷모습이 전혀 달라서 다양한 사진 촬영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지만 옆 모습은 나무들에 가리고 뒷모습은 찻길과 가로등으로 가려져 있어서 제대로 된 성장 사진을 찍는 것은 어렵다. 성당 안에 들어갈 수 있지만 않지만 성당 건너편에 그늘진 계단(웨딩홀 앞 계단)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성당 내부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과 함께 아쉬운 점은 조명이 없다는 것이다. 성당의 멋진 야경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해가 지면 그저 깜깜할 뿐이다.




여행 Tip. 약도는 이 포스팅의 소개된 다른 스팟들과 함께 지도에 표시해 하단에 삽입되어 있음.

              天主教堂입장료 등 없음. 주변의 관광지를 오갈 때 쉽게 들를 수 있다. 성당 앞 광장은 24시간 개방되어있다.


*



기독교당은 독일의 건축가 Curt Rothkegel이 디자인해서 1908년 완공되었다. 서양의 중세성 스타일로 지어졌다. 가스펠 교회라고 불리기도 하고 실제로 예배가 이루어진다. 건물이 정말 예쁘게 생겼다. 붉은 지붕과 노란빛의 외관은 칭다오의 많은 건물들과 비슷하지만 커다란 벽돌로 벽면에 멋을 내고 연한 초록의 종탑이 멋스러움과 귀여움을 돋보이게 한다. 교회에 들어갈 때 10위엔의 입장료를 받는데 들어가지 않고 외관만 본다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이곳에서도 웨딩촬영하는 사람을 종종 보게되는데 천주교당 정도는 아니다. 대체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외관을 보고 실내의 모습에 기대감을 가졌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평범을 넘어서 굉장히 수수한 내부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교회처럼 복층으로 되어있어서 복층에는 성가대가 노래부르는 장소가 있다. 그곳에 커다란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정말 수수하다. 안타깝게도 위로 올라가는 문을 잠겨있었다. 예배가 이루어지는 곳이므로 예배시간에는 아마도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행 Tip. 약도는 포스팅 하단 참고. 靑島 基督敎堂. 입장료 10위엔.

              예배시간 : 7시 30분, 9시 30분. 오전 8시 30분에서 오후 5시까지 관람가능하다.


*



영빈관은 기독교당과 비슷한 스타일로 지어져서 같은 건축가에 의해서 지어졌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아니었다.  독일 건축가 Werner Lazarowicz에 의해 설계되어 1907년 완성되었다. 산동지방을 지배하고 있던 독일이 독일 총독 관저로 사용하기 위해서 지었다. 넓은 부지에 정원과 건물을 지었고 그 내부 또한 호화로웠기 때문에 무려 245만 은괴를 사용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 문제로 총독이 해임되었다. 독일이 물러난 후에는 일본군에 의해서 사용되었고 그 후에는 중국 정부가 사용했다. 중국인들에게는 마오쩌둥이 휴가를 보낸 곳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문화대혁명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저럴까 싶게 중국인들의 마오쩌둥 사랑은 장난이 아닌 것 같다.


입장료 : 20위엔. 8시 30분 - 17시 30분. 青岛 迎宾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