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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차이나 여행기

취푸 여행, 공자의 자손이 살아온 대저택 공부(孔府)

공묘를 나오면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골목을 지나게 된다. 골목을 지나 바로 공부로 이러진다. 공부(孔府)는 공자의 자손들이 살고 있는 대저택이다. 2500년이 지났고 공씨 집안의 족보에 들어있는 사람만 200만명이라고 하니 200만명이 함께 살리는 없다. 장자들에 의해서 이어져 온 집이다. 공자의 첫째 아들의 첫째 아들의 첫째 아들의... 집. 공묘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커졌던 것처럼 공부도 천년이 넘어가는 시간동안 계속 커져갔다. 지금은 남북의 길이가 2킬로미터방이 463칸이나 된다. 송나라 때부터 공자의 적계 후손에게 세습봉호로 '연성공'이라는 칭호가 내려지면서 그 후 연성공부라 불린다. 왕조가 바뀌면서도 공자의 후손이라는 것만으로 인정받고 특권을 누려온 것일까? 황실의 저택을 제외하면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저택이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공묘에 갔다가 공부에 들르기 때문에 조금 피곤해져있어서 사람도 적고 오래머무르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Gate of double glory. 1503년 명나라때 세워졌다. 문에 붙어있는 그림은 사원 입구에 서 있는 사천왕과 같은 의미로 붙어있는 것 같다. 이 문은 평상시에 열리지 않고 황제의 방문, 결혼식 등에 열린다고 한다.



공씨 집안의 개인적인 저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동네의 관광서 역할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관공서 분위기 풍기는 곳들도 존재한다. 결국 이 동네가 공씨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이니까 친척과 가족끼리 일어나는 분쟁을 조절하고 그들의 민원을 들어주는 곳이었으리라.



  

 


Kui tower피난을 위한 타워로 알려져 있다. 위험할 때 이곳에 거주하던 가족들의 의신처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다.


 


높은 담들과 그 사이 사이의 골목길은 내가 집안을 걷고 있는 것이 맞나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어디 골목길을 걸으며 그 주위에 수 많은 집들이 놓여져 있는 것만 같다. 어디 누군가 숨어 들어도 모를 집니다.




 


건물 형태도 비슷하고 이미 공묘에서도 많은 건물들을 보았기에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수 없이 많은 통로와 문을 지나면서 그 문들이 점점 더 피사체로 다가왔다. 서양인 여행자에게는 어떻게 다가올 지 모르겠지만 동양인들에게는 특별한 느낌보다는 그냥 '크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곳이다. 동행이 있었다면 사진찍는 즐거움이라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공자의 직계 77대손인 공더청(孔德成)이 결혼 후 살았던 곳이다. 공부에 있는 많은 물건들이 그가 사용했던 것들이다. 1920년에 태어난 그는 국민당에 소속되어있었기에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패해서 대만으로 가서 살았다. 지금은 중국에서도 전폭적으로 '공자'를 키우고 있지만 어차피 중국에 계속 있었으면 문화대혁명때 어떤 험한 꼴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 대만에서도 그가 공자의 직계손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그는 대만에서 대학교수와 문화재 관련된 요직을 맡으며 살았다. 지난 2008년 그의 죽음은 대만언론에 보도되었다.



공부의 가장 안쪽에 정원이 자리잡고 있다. 1503년 조성되었다. 정원까지 보게 되면 공부를 나와 공림으로 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