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가미가제 독고다이

 

 돌멩이를 품고도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

 

오래 전 김별아의 <미실>을 읽었을 때는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느 날 서점에 가니 1억원 고료의 당선작이라는 문구를 달고 책이 쌓여 있었고 과연 그 소설은 어떤 소설일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탓일까? 재밌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그 후 김별아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오랜만에 읽은 김별아의 소설 <가미가제 독고다이>는 잘 읽히며 재미도 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모던청년 하윤식의 입으로 그의 삶과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윤식의 입을 빌어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지는 소설은 그의 목소리를 벗어나지 않지만 전지적 시점에서 쓸 수 있는 말들을 뱉어낸다. 그 모습이 자연스레 녹아내려 있지만 '어떤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뇌엽에 간직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끌어내 떠올리는 일이다.' 같은 문장은 좀 아니지 않나? 우리의 망나니 하윤식군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기에 갑자기 붕뜬 느낌을 받는다.   

 

 이 소설의 제목이 <가미가제 독고다이>는 무슨 뜻일까? 가미가제라면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자살로서 적을 공격하던 일본의 전투기들을 이야기 하지 않는가. 작가는 친절하게도 제목의 뜻을 설명해주고 있다.

 

 

 

 

 

 

 

 

 임무 수행 완료! 폭풍 같은 설사병을 이겨낸 세키는 제국 군대 최초의 자살특공대원으로 영광되디영광되게 적은 심장부에 꼬라박혔다. 세키가 이끈 부대의 공식 명칭은 '신푸(神風) 도쿠베츠-고게키타이', 줄임말로 '독고다이'라고 부르는 특별 공격대였다. 하지만 요미가나에 익숙지 않은 미국 내의 니세이(일본인 2세)들이 '신푸'를 '가미가제'라고 부르면서 나중에는 공식명보다 별칭이 더 유명해지게 되었다.

 

 <가미가제 독고다이>는 '올미꽃' '진짜 아버지' '홈, 스위트 홈' '비밀' '만남' '그 여자' '형' '첫 키스' '사육제' '너의 마차를 별에 걸어라'의 작은 소제목을 달고 있다(일러스트 작가님 블로그 : http://blog.naver.com/gasigogi2000). '나'는 할아버지 이야기로 입을 뗀다. 그래서 이야기 전체가 그의 이야기인가보다 착각하고 있다가 아버지가 등장하고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삼대를 다룬 전형적인 근대소설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결코 이 이야기를 삼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현옥이 등장하는 것이다.  

 

  문득 겁탈을 당해 도둑아이를 배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 분명함에도 올미 할머니와 혼인하고, 끝까지 어딘가에 있을 친아버지를 동경하며 헛꿈을 꾸는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손도끼까지 꼬나들었던 쇠날이 할아버지가 떠올라 울컥했다. 그 어리석고 못난 할배가 너무 잘 이해되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어린시절 애물단지에서 부인을 잃고 아들에게 외면당하는 '쇠날이 할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이는 그의 일본식 이름에도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그의 생각만이 아닌 것이 드러난다.

 근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어 온 글들을 종종 읽어왔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의 면면은 각각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백정인 할아버지와 도도한 글래머인 할머니, 친일이든 뭐든 상관없이 출세에 눈이 먼 아버지와 타인의 눈에 비추는 자신이 더 중요한 어머니, 성실한 모범생에서 주의자로 결국엔 변절자가 되는 형, 그리고 방탕아에서 사랑에 빠져 군에 가게 되는 나까지 그들의 일면이 모두 하나의 단편소설 이상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이고 결국 그 이야기들이 모여 매력적인 장편소설 한 권이 완성되어진 모습니다. 

 소설에서는 우연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독자가 이를 지적할 수 없도록 작가는 이야기한다. 뭐... '나'의 이야기처럼 우연이 아닌 일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모든 게 필연이라면 내 삶의 완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을 거다.

 

 내가 처음에 물었다. 당신은 우연의 운명을 믿느냐고. 나는 믿는다고 했다. 우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의 어처구니없고 생뚱맞고 기막힌 필연을. 이건 시시풍덩한 허풍이 아니다. 잡귀 붙은 선무당의 넋두리도 아니고 여자를 꾀기 위해 날리는 뻐꾸기도 아니다. 나는 우연이자 필연인 운명이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가 내 앞에 똑바로 마주 서 내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것을 보았다.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윤식은 객관적으로 그가 지금까지 보아오던 여자들에 비해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현옥을 사랑하게 된다. 현옥에게는 나름의 매력이 있었겠지. 하지만 윤식의 나열한 그 매력들은 실제로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기질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니... 어쩌면 밍숭맹숭한 삶을 살아 온 윤신은 삶에 지쳤을 거다. 미지근한 자신을 뜨겁게 만들어 줄 무엇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형의 여자를 사랑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종종 그 대상에 대한 사랑보다 사랑하는 감정으로 충분한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그 위대함을 더 빛내려고 하지 않는가. 죽을 것이 뻔한데도 형 대신 군에 가겠다는 윤식의 마음은 현옥에 대한 사랑보다 그 사랑에 푹 빠져 있는 자신에 대한 뿌듯함이 더 큰 건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불편함의 정체가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사랑의 터무니없음. 어처구니없음. 그러나 어떨 수 없음이라니!

 

 가미가제 독고다이는 소설 속의 일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수천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미군의 선박에 떨어졌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공격의 성공확률은 6퍼센트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6퍼센트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본능조차 무시할 정도로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이 백에 여섯이나 되었다는 소리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들은 21세기인 지금도 존재한다. 자살 폭탄 테러범들이 이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의명분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속이고 어리석게 만드는 지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수 많은 일들에 소름이 끼친다. 결국 그 대의명분 뒤에는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 있고 전면에는 이 드높은 이상에 희생당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누군가 신간 중에 재밌게 읽을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건네 줄 책이다.

 

* "그 칼이 움직이는 대로 뼈와 살이 갈라지면서 서걱서걱 나는 소리가 태평성대에 유행한 춤곡을 방불케 하였다지! 살점과 심줄을 건드리지 않고 큰 뼈를 다치게도 하지 않으니,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단 한 번도 칼을 바꾸지 않았다는 거야.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니 그 뼈마디와 뼈마디의 틈새가 환히 비췄던 게지. 아아, 얼마나 놀라운 기술인가! 포정 어른이야말로 우리들의 성인이시지!"

 

* 문명의 시대에 미신 타파를 외치는 목소리가 드높아 귀신이나 도깨비는 슬쩍궁 엉덩짝이나마 걸칠 자리조차 없어졌지만, 손에 하나를 움켜쥔 채로 눈을 다른 하나를 좇는 인간의 탐욕만은 시대와 상관없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 "명심하시오. 세상 사람들은 이곳을 도살장이라고 부르지만, 우리에게 이곳은 도살장이 아니라 천궁(天宮)이오. 따라서 우리의 임무는 멱을 따고 각을 뜨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온갖 고통을 겪으며 열심히 일한 소가 하늘로 여행을 떠날 때 천상계까지 안내하는 일을 하는 것이오."

 

* 사실 어머니는 돈도 없고 내세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열등감을 숨기기 위한 포장지로는 자존심만 한 게 없으니까.

 

* "네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하면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그렇게 말하는 걸까?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대부분의 범죄는, 사기나 살인까지도, 모르는 사람보다는 아는 사람에게 더 많이 당하는 법이다. 아니까 속이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이다. 배신이야 더더군다나 말할 것이 없다.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건 그 이전에 믿고 기대하고 의지했다는 증거다. 내가 어떤 사람을 믿고 기대하고 의지하는 일을 아예 않기로 마음 먹은 까닭도 배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배신의 결과물로 태어난 내게 그것은 태내에서부터 학습한 생존 본능일는지도 모른다.

 

* 내가 자라날수록 아버지는 더욱 부자가 되었고, 아버지가 부자가 될수록 나는 더욱 그를 경멸하게 되었다. 그는 인생 전부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게 분명했다.

 

* 아무튼 아버지의 말 중에 한 가지는 분명 옳았다. 많이 아는 것이 다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

 

* 아버지는 지금껏 인생에서 '진짜'를 찾아 헤매었다. 진짜 아버지, 진짜 양갓집 규수, 진짜 부와 명예와 권력...... 하지만 진짜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는 가짜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진짜'를 찾아다닌 여정은 다만 자신이 얼마나 '가짜'인가를 증명하고 다닌 것에 불과했다. 그것이 아버지와 여인이 함께 나눈 밥상 위에 앙상한 생선뼈와 함께 비릿비릿하게 드러나 있었다. 난생처음 아버지가 아주 조금 불쌍했다.

  

* 구질구질한 건 딱 질색이었다. 비참한 모습 앞에서는 눈을 질끝 감아버리는 편이 나았다. 내 일이 아니었다. 남의 삶이었다. 싫다. 정말 싫다! 그런데도 입안에서 들끊는 악다구니를 차마 내뱉지 못한 채 나는 난전에 걸터앉아 현옥이 사주는 돼지죽 같은 밥을 꾸역꾸역 퍼 먹고 있었다.

 

* 암컷들의 새된 비명과 수컷들의 울부짖음이 뒤섞였다. 그것은 필사적으로 죽음을 거부하며 내지르는 절규였다.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휠씬 더 삶에 열광하며 살고 있었다.

 

* 돌멩이를 품고도 보석처럼 빛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요사가 부릴 수 있는 마법이기에 세상의 어느 누가 나를 발에 채는 막돌로 보든 나는 홀로 반짝거렸다.

 

* 이 훈련을 미친 짓이라고 여기든 말든 어쨌거나 쪽팔렸다. 쪽팔림은 수컷들의 숨이 붙어 있는 동안 끊임없이 그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원동력일 것이다. 쪽팔려서 차마 도망치지 못하고 쪽팔릴까 봐 벌벌 떨면서도 앞으로 나가갔던 인류 역사 속의 수많은 수컥들에게 위로와 동정을!

 

* 그녀의 말대로 초조함이란 결국 불안에서 비롯되는 것! 나는 잇몸이 시큰하도록 어금니를 악물었다.

 

* "너의 마차를 별에 걸어라!"

        ...................

   "...... 초월주의자 에머슨의 말이지. 현실의 노예가 되지 말고 드높은 이상을 추구하라고! 하지만 비이성적인 광기에 뒤덮인 세상에서 이상 따윈 기대할 수 없지. 소모품으로 전략한 인간이 출구가 없는 곳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희생뿐이야. 누군가 자기희생을 해야만 죽음의 사슬을 끊을 수 있어. 비록 그 과정이 비극일지라도, 결과는 조금이나마 이상에 가까워지겠지......"

 

* 대부분의 작가나 화가는 정상에서 멈춰버린다. 그다음은 성공장에 대한 자기 모방이 시작된다. 요컨대 우려먹기다. 창조가 아니라 자기증식이다.

- 훗타 요시에

 

Posted by 가나다라마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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