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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차이나 여행기

유네스코 세계복합문화유산, 중국 태산 등산기


 태산은 누구나 아는 산이다. 어린 시절부터 무수히 들어왔던 단어지만 그것을 곧이 곧대로 산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태산의 이미지는 그냥 '큰 것'이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시조와 '티끌모아 태산'으로 그저 크고 높고 많은 것을 의미하는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 여행을 준비하면서 태산이 어디에 있는 지와 높이가 1545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태산이 이렇게 인식된 것은 중국 사람들의 생각이 전이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태산은 중요한 산이다. 전설 속에 나오는 '세상이 가장 평화로웠다는 요순시대'의 바로 그 '순' 임금이 5악(중국의 5대 명산으로 꼽히는 태산, 화산, 형산, 항산, 숭산) 중 가장 먼저 태산에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래서 72명의 황제들(왕조를 달리하며 한 시대의 주인 행사를 했던, 무려 72명의 황제들)이 태산에서 봉선의식(하늘에 제를 올리는 것)을 하였다. 진시황제(BC 259 ~ BC 210)가 제를 지낼 때 산 정상까지 이르는 지금의 길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태산을 오르는 길은 완전히 계단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단으로 이어져있다. 그 개수를 찾아보면 6천개, 6600개, 6666개, 7천개, 8천개등 통일되어있지 않고 중구난방이다. 6천개에서 8천개 사이는 분명한가보다. 2천년전에 이 돌들을 지고 올라와서 계단을 만들고 그 길로 황제를 가마에 태우고 올랐을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지금 비록 가난해서(?) 셔틀버스와 케이블카가 아닌 두 발로 수천개의 계단을 오르지만 이것이 결코 힘든 것이 아니다.



이른 아침 유스호스텔을 나와 태산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어제 유스호스텔에 도착하기 전까지 태산을 숙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친절하게도 유스호스텔에서 나누어준 지도와 설명에는 걸어갈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2천년 동안 이어져온 황제가 태산으로 가던 전통적인 길이라고 적혀있었다. 대묘 옆을 지나쳐 걷다보면 위의 사진에 보이는 대종방(다이쭝팡,岱宗坊)이 나타난다. 대종방을 지나 가다보니 흐린 안개 속에 둘러쌓인 태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날이 좋으면 대묘 앞에서도 보여야 정상인데 어제와 이른 오늘 아침에는 하늘이 뿌옇게 흐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태산을 오르면서 날이 화창해졌다는 것이다. 태산 근처는 태산으로 향하는 차들이 많아서 길이 막히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은 셔틀버스와 케이블카를 탄다.


 


태산은 도교의 본산이고 2천년 이상 중국에서 신성한 산으로서 위치해 있었기에 22개의 도교와 불교 사찰, 819개의 비석, 비문 1081개 등 이 산재해 있다. 그러한 것들로 인해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복합문화유산에 선정되었다. 일천문을 지나면 홍문궁이 나온다. 오래전 세워졌다가 1626년 명때 해체해서 동서 정원으로 나누고 가운데는 비운각으로 연결하였다. 서쪽에 벽하원군 동쪽에 비륵보살을 모시고 있다. 벽하원군은 중국 북동쪽 산악 지역에서 산악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벽하원군은 태산의 신이 동악대제 딸이라고도 하는 도교의 여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 정산에 벽하원군을 보신 벽하사가 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들었던 시조는 조선시대 문신 양사언(1517-1584)이 지은 것 이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그 외에도 '티끌모아 태산' '태산북두'이라는 말도 있다. 태산북두는 태산과 북두칠성을 가리키는 말로 가장 높은 인물을 일컫는 말이다. 심지어 찬송가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도 있다.흔히 태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실제 태산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실제 태산에 와본 사람들 뿐일 것이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인 것은 확실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힘겹게 한발씩 내딛지만 결국은 정상에 다다르니까. 하지만 '티끌모아 태산'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티끌모아서 태산을 만들 수는 없다. 아니, 티끌모아서는 우리 동네에 있는 80미터짜리 정발산도 못 만들 거다.



워밍업을 하며 올라오면 이제 티켓팅을 하는 곳이 나온다. 비싼 티켓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동네 주민이 산책을 하는 것인지 여기까지만 올라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가격은 성수기 127위엔(약 23000원). 비성수기 102위엔. 60세이상,학생,어린이 62위엔이다. 얼핏 태산은 그저 높이가 2배 정도 높고 건물이나 이런 것들이 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진 북한산 정도라고 느꼈다. 근데 입장료가 127위엔이다. 그래 세계문화유산이니까... 근데 수원화성은 성인 입장료가 2천원이다. 중국은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 단순히 입장료가 이 가격이고 나처럼 체력과 시간이 가능한 사람이 아니라면 셔틀버스(30위엔), 케이블카(편도 80위엔, 왕복 140위엔). 우리가 가볍게 북한산을 오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돈 없으면 등산도 못한다. 중국에서는 등산이 돈이 많이 드는 취미인 것이다. 태산 등산 전에 물과 먹을 것을 챙기는 것이 좋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2위엔이던 물은 3, 4, 5위엔까지 치솟는다. 음식들도 마찬가지다.


 


투모궁(鬪母宮)은 언제 세워졌는지 알 수 없는데 용천관이라고 불렸다. 명나라 때인 1542년에 보수 작업한 후 여승이 주지를 맡게 되었다. 태산 등산길 중간에 있는 유일한 불교 사원이다. 등산로 초반에는 길 양쪽으로 사원들이 자주 보인다. 사원에 들어가면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건물이 형성되어서 사원을 지나치면서 산을 올라갈 수 있게 해두었다. 등산로만 걷기도 힘든데 여기저기 들어가는 걸 꺼리는 사람들을 사원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사원으로 들어가도 계속 산을 올라갈 수 있다는 안내를 해둔다. 투모궁의 투모를 모시고 있는 사원이어서 그런지 예쁘다.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정상까지 오르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서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데 옆으로 뭔가 휙 지나간다. 뭐~지? 나만 벙찐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아니다. 주변의 모든 중국인들이 뒤를 돌아보면 벙찐다. 뛴다. 걸어도 힘든 길을 뛰고 있다. 그것도 본격 러너의 복장으로 전력으로 뛰고 있다. 이...건 태산 달리기 대회!!!! 남녀 구분없이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역시 대륙이다. 달리기 대회도 남달라. 난 글렀어. 걸어 올라가면서도 힘들다고 생각했잖아. 그렇게 선두 그룹이 지나가고 나자...



왠지 모르게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웃음이 나는 다수의 러너들이 오고 있었다. 뛰다가 걷고 주저 앉고 벽을 잡고 한참을 서 있는 평.범.한. 사람들. 철퍼덕 주저앉은 2139번 아저씨의 속마음이 말풍선이 되어 들리는 것 같았다. '제길 뭐하는 거지. 사서 고생하고 있어.' 나란히 벽을 잡고 헉헉 거리고 있는 6017, 6018은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는데 정말 참 오랫동안 저러고 있었다. 중간에 의사와 간호사, 경찰들도 있더라. 이렇게 태산 정상까지 가는 건 정말 자살 행위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히 대회는 중천문이 결승전이었다.


 


 


중천문에서는 완주자들에게 완주인증서를 나눠주고 기록을 재고 있었다. 태산에서 이루어지는 꽤 큰 행사인지 여러 방송국 방송국에서 촬영도 왔다. 63빌딩 달리기 대회처럼 뉴스에서 잠깐 다루는 정도 되지 않을까? 중천문은 근처에 셔틀버스 정류장이 있다. 대부분의 러너들은 대회가 끝났음에도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가지 않고 정상으로 걸어올라간다. 아무래도 입장료 비싼 태산이다보니 그냥 나가는게 아쉬웠을 것 같다. 달리기 대회 참가하면 입장료 안 냈겠지? 부... 부러워해야 하나? ㅎ


 


숲 속에 갇혀져 조각조각 볼 수 있었던 태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중천문이다. 남천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아... 꽤 끔찍해 보이는데? 보는 게 좋다. 여기서 산장이 있어서 이런 풍경을 방 침대에 누워서 볼 수 있다. 산 정상에 있는 산장도 좋겠지만 여기 있는 산장도 좋을 것 같다. 물론 가격 대비 시설이 좋지 않지만 풍경이 그 갭을 메워준다. 



 


나중에 다시 태산을 오게 된다면 산장에서 하룻밤 자며 일몰과 일출도 보고 셔틀버스와 케이블카를 타야겠다. 그러면 태산은 유유자적하는 관광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명나라 때부터 이 지역 사람들이 즐겨먹고 있다는 태산 팬케이크다. 태산 여기저기 많이 보이고 사람들이 사먹는 거 보면 태산에서 유명한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즐겨먹는 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게 맛있고 즐겨먹는 다면 태안에서도 볼 수 있어야하는데 한번도 보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맛이 없다. 태산에서 태산 팬케이크(8위엔)를 보고 드뎌 그 유명한 걸 먹을 수 있구나 하고 사 먹었는데 도저히 하나를 다 먹기 힘들었다. 수수로 만들어진 껍데기(?)에 생파와 아침에 즐겨먹는 기름진 빵이 들어있는데 느끼하고 생파의 유쾌하지 않은 매운 맛...... 3~4달 동안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오랜시간 산행 동안 상하지 않을 음식으로 이게 만들어진 게 아닐까? 이게 소개된 것에서 파가 더 가득 들어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나마 조금 들어있다. 탄산음료를 땡기게 하는, 쓰레기통을 찾게 만드는 마법과 같은 음식 같으니라고.  


  


태산의 탄생에 대한 전설이 있다. 최초의 인간 판구(기독교에서는 아담이지만 도교에서는 판구)가 죽은 후의 판구의 머리가 태산이 되었다고 한다. 판구의 몸은 오악에 해당하는 다른 4개의 산이 되었다. 머리는 신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부분이다. 황제가 중요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태산은 오악 중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동쪽에 위치해 있다.이것이 중요한다. 해가 가장 먼저 비치는 곳으로 번영을 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이 깃든 곳으로도 여겨서 고대 중국에서는 황제가 된 후 태산에 가서 제를 올리는 일을 가장 먼저 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위치적인 영향도 컸을 것이다. 예로부터 산동 지방은 중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산동성에서 가장 높은 산이 태산이다. 북경을 비롯해서 과거 많은 제국들의 수도와 멀지 않다. 황제 뿐 아니라 공자와 마오쩌둥도 태산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있다. 다양한 매력이 있어도 접근이 어렵다면 사람이 많지 않을텐데 지금은 셔틀버스와 케이블카로 누구나 정상에 올라갈 수 있고 베이징에서도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만장비는 청나라 건용13년 (1748년)에 건용황제가 암벽에 시를 조각한 것이다. 높이 25미터 너비 13미터다. 중국인들에게는 최소한 2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태산이 영험한 산이었기에 태산에 대한 한가지 믿음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태산 정상에 오르면 100년 장수한다는 믿음도 있는데 이건 수명을 관장한다는 태산부군이라는 신이 태산에 살고 있기 때문이란다. 태산에는 금으로 만들어진 상자 안에 온 세상 사람들의 이름표가 들어있는데 이름과 함께 언제 죽는지 적혀 있다고 한다. 그럼 태산 정상에 오르면 태산부군이 장하다면서 슥슥 원래 수명을 지우고 100이라고 적어주는 건가? ㅎ  



남천문으로 오르는 저 가파르고 긴 계단이 태산의 일출 사진과 함께 태산을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계단은 십팔판이라 불리는데 개산부터 남천문에 도달하는 전체의 길이는 800미터고 수직 고도는 400미터다. 1600개의 돌계단이 가파르게 놓여있다. 계곡 사이에 붉은 문이 있고 그 위로 사람들이 오르니 마치 지옥문(?)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같다. 저 문을 들어가면 저 세상이 되는 거지.


 

 


남천문을 지나면 이제 능선을 따라 넓은 길과 많은 건물들을 볼 수 있다. 남천문까지 왔다면 이제 한 숨 돌려도 좋다.



천가. 천문관위에 위치하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서쪽에 남천문이 있고 동쪽에 벽하사가 있으며 전체 길이는 600미터다. 주위를 둘러보면 천상의 세계로 비상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설명되어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건물들은 죄다 음식점과 가게들이다. 비싸다. 맛있는 것도 아니다.




구불구불 지나온 길. 다른 나라 같았으면 산 속에 있는 길이기에 나무들에 덮히고 흙길이어서 뚜렷이 보이지 않을텐데 회색 돌이 깔려있어서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태산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한 듯 하니 이제는 사진만 열거. 사진이 많아서 포스팅을 2개로 나누려다가 그냥 하나로 묶었다. 사실 하산기는 따로 써야 할만큼 파란만장했는데 쓸만한 사진이 없어서 간단하게 쓸 듯.


 





벽하원군이 모셔져 있는 벽하사다. 소진관, 벽하영궁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송나라 때 지어졌다. 중국 도교의 유명한 궁관으로 중국 산악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도교 사원임을 물씬 풍기는 도교 모양의 방석들과 택견 하는 분들 같은 복장을 한 거주자들이 많이 보인다. 오래전 윤리시간에 배운 내용을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생각나는게 별로 없다. 찾아보니 중국의 민족종교이자 철학사상이라는 것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불교, 기독교와 달리 도교는 중국인들에게 안성맞춤으로 만들어진 종교이자 사상이었던 것이다.




 


공복석은 탐해석이라고도 불리는데 일출, 운해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장관이다. 태산의 멋진 사진들 중 이 공복석 사진들도 있었는데 날 좋은 낮에 보니 그냥 기울어진 큰 돌에 불과 하다. -_-



옥황정. 태청궁, 옥제관이라고 불리는데 도교 최고의 신인 옥황대제가 모서져 있다. 고대 황제들이 이 옥황정에서 제사를 지냈다. 도대체 황제는 어떻게 여기까지 올랐을 지 아직도 궁금하다. 공자도 걸어서 올라왔나? 이곳이 태산의 정상이다. 정상에 떡하니 건물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이 건물에는 옥황대제 뿐 아니라 공자와 벽하원군을 모신 사당도 함께 있다. 이 3개의 사원 가운데는 자물쇠가 가득하다. 이 자물쇠는 결연쇠라 불리는데 공자, 벽하원군, 옥황대제와 결연을 맺고자 하는 사람들이 걸어놓는 것이다. 파우스트가 떠오르는 것은 너무한 것일까? 힘있는 사람들과 자물쇠로 계약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곳에서 소원을 말한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그 소원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지 않을까? 가령 100억의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래서 당첨이 되었는데 이 태산 꼭대기에서 살아야 한다거나 하는. ㅎ 돈은 많은데 쓸 수 없는거지.





옥황정에서 바라보는 정상의 모습들이 좋다.





이제 슬슬내려가보기로 한다. 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 내려가려는데 옥황정 뒤쪽으로 exit 표시가 되어있다. 나갈 때는 이 길로 나가야 하나 싶어 그 길을 따라 내려간다. 재앙의 시작이었다. 어리석었다. 딱 보니 사람이 없다. 한가롭게 내려갈 수 있어서 좋을거라고 생각했다.



본래는 조금만 내려가면 남천문과 이어지는 길이 나오게 되어있는데 무슨 공사를 하는지 그 길 사이에 있는 건물을 지나갈 수 없게 되어있었다. 이 순간 다시 옥황정으로 다시 올라가야 했지만 다시 올라가는 게 힘들었다. 같은 길로 내려가는 것보다 새로운 곳으로 내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 조사도 없이 산에서 다른 곳으로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태산의 반만한 북한산도 어디로 내려가냐에 따라 고양시가 나올수도 서울, 의정부가 나올 수도 있는데 참... 대책없는 생각이었다.


 


길은 깔려 있었지만 올라왔던 길과는 달리 무성한 풀들로 사람이 안 다니는 티가 났다. 좋은 건 사람이 없다는 거 불안한 것도 사람이 없다는 거. 그들로 걷는 시간이 길어서 그건 좋았다. 내려갈 수록 불안해져 온다. 이 길 끝에는 무엇이 나올까. 도시만 나온다면 시내버스 몇 번 갈아타면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도토리 안 먹나? 엄청나게 많은 도토리가 떨어져있다. 깨끗하고 크다. 그래, 입장료 2만원 넘게 내고 들어와서 도토리 줍는다는 것도 우습지. 아니, 여긴 애초에 사람이 안다니잖아. -_-



불안함의 끝에 드디어 찻길로 내려왔다. 도시는 아니고 중천문 옆의 셔틀버스장과 같이 이곳도 셔틀버스가 서 있다. 근데 사람이 없다. 매표소도 있는데 전부 횡하다. 아무래도 셔틀버스를 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난 걸어 내려가기로 한다. 하지만 내가 놓친 것이 있다. 일천문에서 걸어오는 길은 태안의 중심과 바로 이어져 있지만 이 곳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셔틀버스를 이용하게 되면 사람이 바로 걸어올라오는 길보다 훨씬 긴 거리를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차가 다닐 수 있는 곳으로만 길을 냈을테니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또 긴긴 길이 시작되었다. 셔틀버스가 다니는 길만 2시간 넘게 걸은 것 같다. 어느 정도 내려가면 계곡물을 따라 걷기 좋은 길이 나온다. 하지만 그 길을 나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걷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2시간동안 5,6명의 사람을 봤는데 결국 4,50분마다 지나가는 셔틀을 잡아타고 내려가더라. 난 이미 걷기 시작한 것 계속 걷기로 했다. 이 길 끝에는 도시가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대체 여기가 어딘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도를 보니 저 검은 선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셔틀버스가 다니는 구간이고 그 위가 걸어서 올라가는 구간이다. 태산과 태안 전체 지도가 없으니 내려가는 곳 이름은 알아도 그게 어디 쯤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근데 풍경들이 꽤 좋다. 내가 조금만 덜 지치고 정보만 있었다면 좀 더 유유자적 할 수 있었겠지만 난 불안하다. 내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산 밑으로 내려갈 수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드디어 셔틀버스 수십대가 서 있는 정류장에 도착!!! 저 많은 셔틀버스가 있는데 내가 걷는동안 단 3대만 지나갔다. 사람이 꽉 차야만 출발하기에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이 코스로는 별로 안 다니나보다. 근데... 아무것도 없다. 시내버스도 없다. 도시도 없고 사람도 없다. 셔틀버스 정류장을 지나가지만 그저 텅빈 시골길 뿐. 명나라 때 만들어졌다는 temple of lord yuan이 옆에 보일 뿐이다. 시내버스 정류장도 없었거니와 찾았다고 해도 5시가 넘어서 태산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오가는 시내버는 끊긴 시간이다. 이래서 걸어내려오던 몇명도 셔틀을 탄 거였어. 아... 공황 상태에서 우선 계속 걷는다. 봉고차가 접근한다. 중국어로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나 중국어 못한다는 제스처를 하고 얼마냐니까 100위엔이래. 아, 내 이틀밤 숙박비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지만 우선 튕기고 계속 걷는다.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어차피 그 봉고도 떠나야했다. 결국 나를 쫓아오더니 우선 타란다. 해가 이미 수평선에 걸려있었기에 우선 탔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을 볼 때마다 차를 세워 영어를 할 수 있는 지 묻고 나와 대화를 하려고 시도했으나 영어하는 사람 발견에 실패. 꽤 가다가 왕복 6차선 길이 나왔다. 지나가는 버스도 보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지고 나온 지도를 펼치고 여기 갈 수 있냐고, 얼마냐고 물으니 50위엔. 됐다고 내려달라고 했다. 10위엔 달란다. 10위엔 주고 좀 걸으니 시내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딱 한대의 버스가 서는 곳이다. 다행히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다. 기차역으로 가서 대묘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시내버스만 1시간을 탔다. 아.. 나 어디로 내려간거니. ㅎ 그 봉고차를 만나지 못했다면 난 어디로 갔을까?! 사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ㅎ



아침에는 보이지 않더니 늦은 시간이 갈 수록 날이 맑아져서 이제 대묘 앞에서도 태산이 선명하다. 어찌되었든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으니 된거다. ㅋ